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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 1월 28일 (목), 오전 12:00

특종 사진기자의 '귀농 양봉기'…"이게 바로 내가 찾던 꿀 인생"

최순호 전 조선일보 기자, 은퇴 후 고향 남원 주천면서 '인생 2모작'
"기자 때부터 제대로 하는게 좋았어요…지금이 바로 꿈결 같은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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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통 살펴보는 최순호 씨(남원=연합뉴스)

정경재 기자 = 1월 28일 오후 전북 남원시 주천면에서 최순호 씨가 벌통을 살펴보고 있다.

(남원=연합뉴스) 정경재 기자 = "왜 양봉이에요?"


 음식점에서 밥을 먹고 자리를 옮겼다. 입춘을 재촉하는 싸라기눈이 황량한 지리산 자락 능선에 쌓일 무렵이었다. 운치 있는 아담한 카페에 마주 앉아 질문을 던졌다. 굵직한 이슈의 현장을 누비던 그를 여기서 만나게 된 이유가 자못 궁금했다. 따뜻한 커피 한 모금을 홀짝인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길지 않았다. "평생 고생만 하신 어머니와 함께하고 싶었어요." 지난달 28일 오후 전북 남원에서 만난 최순호(53) 전 조선일보 사진기자의 답이었다.


◇ 명동성당 투신 순간 포착한 한 장의 사진…독재 참상 고발


최씨는 1991년 11월 조선일보에 입사했다. 사진을 좋아해 학보사에 있던 청년을 언론인의 길로 이끈 것은 1988년 5월 15일 한 젊은이의 투신이었다. 명동성당 옥상에 선 스물네 살 대학생 조성만은 한반도 통일과 올림픽 남북 공동 개최, 미군 철수, 독재 타도를 요구하며 몸을 던졌다. 경찰의 삼엄한 감시 속에 청년의 카메라 셔터가 한 차례 빛났다.


그는 곧장 자리를 떠나 대학로 근처 술집으로 향했다. 헤어나올 수 없는 충격에 진탕 술을 마시고 양팔에 얼굴을 파묻었다. 애써 찍은 사진을 확인하지도 않은 채였다. 뇌리에 아로새긴 또래의 죽음은 십여 순배의 독주로도 씻기지 않았다. 그때 다가온 한 외신기자가 물었다. "아까 찍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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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만의 투신

1988년 5월 15일 조성만이 명동성당 교육관에서 몸을 던지고 있다.

[최순호 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최씨는 답 대신 카메라를 기자에게 내밀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통일을 염원했던 꽃다운 청년의 마지막 순간을 담은 사진은 신문에 크게 실려 군사정권의 압제와 참상을 알리게 된다. 그가 그때 셔터를 눌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최씨는 이때부터 현장을 낱낱이 기록하는 사진기자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언론사 입사 이후에도 굵직한 특종을 건져냈다. 중국 연변조선족자치주 연수특파원 시절 촬영한 탈북자 사진이 대표적이다. 당시 취재기는 최씨의 입을 빌린다.


"알려주는 사람이 있었어요. 말이 그렇지 넘어오는 장소만 가리키고 다른 곳으로 갔거든요. 걸리면 자기도 죽으니까. 한 번씩 다시 와서 보는데 내가 죽었나 안 죽었나 확인하러 온 거예요. 시체라도 갖고 가려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계속 기다리고 하다가 결국 찍었죠. 우리나라 기자로는 처음이었어요."


최씨는 특파원 시절 촬영한 사진을 모아 탈북자의 애환과 고통을 담은 '탈북 恨'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목숨을 내건 북-중 국경에서의 기다림은 험난한 탈북 여정을 세상에 전하는 기록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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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호의 '탈북 恨'최순호 기자가 연수특파원 시절 촬영한 사진


그는 이후로도 청와대를 출입하며 찍은 'B컷(선택하지 않은 사진)'을 모은 전시와 국방부 협조로 비무장지대(DMZ)에서 만든 다큐멘터리를 내놓는 등 보도 사진계에 굵직한 족적을 남겼다. 탈북자와 외국인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의 삶에 특히 관심을 두고 보도했다. 사건·사고 현장에서도 다른 기자들이 가지 않은 곳에 머무르며 남다른 결과물을 숱하게 쏟아냈다. 그가 여러 번 강조한 "여한이 없다"는 말은 23년간 사진기자로 치열하게 살아온 인생역정을 압축하는 소회였다.  


◇ 다시 찾은 고향…꿀벌과 함께하는 그야말로 '꿀 인생'
그래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다. 왜 하필 양봉이냐고.


30여 년 만에 고향을 다시 찾은 최씨는 은퇴 이후 농사일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학창 시절 돌아가신 아버님을 대신해 십수 년 동안 양봉 일을 하며 세 자녀를 뒷바라지한 어머님을 돕고 싶다는 뜻이 컸다. 카메라를 놓은 뒤에도 틈틈이 사람들을 만나며 정보도 얻고 손에 잡히는 대로 공부했다.


처음에는 동네 묵정밭에 들깨를 심었다. 농사는 잘됐지만, 고령에도 농사일을 돕겠다며 밭에 쭈그려 앉은 어머니의 무릎이 상할까 걱정됐다. '다른 일을 해볼까?' 하던 차에 양봉 일을 하는 지인을 만났다. 고민을 털어놓던 중 지인이 던진 한마디는 그의 인생을 바꿔놨다. "너도 양봉 한 번 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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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봉 일하는 최씨[최순호 씨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그 길로 최씨는 벌통 30통을 사들였다. 수십 년을 돌고 돌아 부모님이 하셨던 가업을 잇게 된 셈이다. '이왕 할 거면 제대로 해보자'라는 생각에 특파원 시절 모았던 항공 마일리지를 털어 전 세계 '양봉의 성지'로 불리는 슬로베니아로 떠났다.


"기자 할 때부터 제대로 하는 게 좋았어요. 페이스북으로 미리 그곳에서 양봉하는 분들을 섭외해서 꿀로 술도 만들어보고 '팜스테이'도 했어요. 워낙 산업이 발달해 있다 보니 양봉을 관광 상품화했더라고요. 그곳 자연환경이 지리산 자락과 비슷해서 우리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끊임 없는 연구와 노력 덕에 최씨의 벌통은 한때 120통까지 불어났다. 지난해 지리산 인근에 쏟아진 폭우만 아니었어도 이날 수많은 벌통을 볼 뻔했다. 당시 워낙 큰 피해를 본 탓에 지금은 다시 30여 통 정도로 규모가 줄었다고 했다.


최씨는 수해에도 좌절하지 않았다. 요즘은 귀농일기를 담은 유튜브 방송에 흠뻑 빠져 있다. '꿀 인생 TV'라는 이름의 채널에는 벌써 140여 개 영상이 올라와 있다. 구독자도 어느덧 1천300명을 넘겼다. 양봉 일은 물론이고 산책, 커피 만들기 등 그의 소소한 일과가 온라인상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최씨가 벌통 옆에 지은 천막 한편에는 방송을 위한 조명과 노트북이 펼쳐져 있었다. 한 번 할 거면 제대로 하자는 그의 가치관이 여기서도 엿보였다. 방송은 이 곳에서만 하는 게 아니라, 벌통과 도로, 마을 주변 모든 곳이 무대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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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방송하는 최씨(남원=연합뉴스)

정경재 기자 = 1월 28일 오후 전북 남원시 주천면 농가에서 최순호 씨가 유튜브 방송을 하고 있다. 2021.2.2


 그는 지금의 생활에 만족한다고 했다. 세 남매를 키운 어머님과 함께 지내는 지금이 '꿈' 같다고 말했다. 후회 없느냐는 마지막 질문에 최씨는 이렇게 답했다.


 "아마 제가 일할 때 하고 싶었던 걸 제대로 하지 못했다면 미련이 많이 남았을 거예요. 생각했던 모든 일을 최선을 다해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지금이 바로 '꿈결 같은 시간'입니다."


    jay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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